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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의 시 나의 그림[창작] 나의 시 나의 그림 2021. 11. 7. 03:17
돌아가야 할 땅
내 나이 먹으면 가야할 곳이 있다
끈끈한 젖줄로 날 묶어 손짓하는 내 탯줄 묶인 곳
어젯밤에도 꿈에 선하게 나타난 곳 내 숨터 그 바다
조상 대대로 사랑사랑 물려주다가 묻힌 그 땅
어린시절 밤이면 엮던 바다전설 그 푸르디 푸른 이야기들
귓전 울리던 범바윗골 솔바람 속에 지금도 들려온다
깊이조차도 알 길 없던 태고적 이야기들
갯가 은모래 위에 보석처럼 반짝이고
처녀 적 죽은 언니 무덤가엔 억새꽃 가을이면 머리 헤풀고
파도 치는 세월만큼 울었던가 억새 속대처럼 앓았던가
강물만한 내 눈물 다 마르면 나 그때 돌아가리
아장대던 내 발자국 박힌 길 찾아 다시 보고
정다운 이들 얼굴 외우며 어린아이 적에 불렸다던 내 이름도 찾아얒지
세상이 그림같던 내 유년의 뜨락에서 잠시 만났던 아버지와
부처 같던 두 할머니와 지치도록 일하고도 젊디 젊던 동네 아낙들과
사시장철 거대한 가슴으로 팔딱이는 바다의 숨결을 만나고 또 만나야지
꼭 돌아가야 할 고향 땅
가보고 싶은 길
노을빛 단풍숲 사잇길로 아이들이 떼지어 달렸다
솔바람 탄 샛노란 잎새들이 일제히 바람이 되었다
복숭아 빛 작은 소녀들의 얼굴엔 울긋불긋 잎새들이 춤을 추었다
다람쥐 쫓던 소년들의 함성이 골짝을 뛰어 메아리를 불렀다
그 길 다시 찾아 오르면
늙은 소나무
날 기억할지 몰라
만나야 할 사람 잠시 만나고 띄워 보내며
몇 겁의 전전생을 무엇으로 살고지다가
오늘 우리 이렇게 만나 사연 하나 없이도 묻고 싶어 서성이는가
전생 어느 죽음의 뒤안길 얽혀진 인연 있어 무엇으로 풀려고 오늘 이렇게 마주쳐
이미 오가는 것 하나 없이도 훔뻑 서로 받아 설레이는가
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태어남과 죽음이 그러하듯이
우리들 가슴가슴 불어재끼는 바람이 그러하듯이
오직 아름다운 만남과 이별만을 위한 기도가 필요할 뿐
그래서 죽음은 새로운 만남을 위한 희망이고 약속인가
억겁을 흐르는 망각의 늪을 헤쳐 어느 별에 또 다시금 무엇으로 태어나
오늘처럼 만나길 원하는가
자, 오늘은 만나야 할 사람 잠시 만났으니
아득히 먼 먼 길 이승의 바닷길에 그 사람 띄워 보내자
시간여행길에서 만난 나에게
그 뜨락에 서 있구나 풀꽃처럼 향기 가득 품고서
청초한 모습 어여쁘다
늘 홀로 삶 한 복판에서 바람 속을 걷는구나
의연한 모습 기특하다
그 길목에서 서성이는구나 눈물 흘리지 않고 속으로 삼키며
강한 모습 아름답다
자주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며 풍랑에 시달리는구나
결코 주저앉지 않은 너 자랑스럽다
그 시간 속에서 침묵하는구나 뜨거운 불씨 가슴에 꼬옥 심으며
참아낸 모습 눈물겹다
언제나 휘청임 없이 길을 가는구나
사철 푸른 솔 같은 너 고맙다
추억 봉숭아꽃물
봉숭아꽃이 피기 시작하면
내 고향 소녀들의 손톱이 빨갛게 물들어갔다
꽃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일하고도 밤 늦도록 봉숭아 꽃물을 찧어내던
고향 아낙네들은 붉은 봉숭아꽃물로 여름을 물들였다
오늘 나는 서울 하늘 아래에서 희뿌연 하늘을 바라보며
고향 여름 붉은 봉숭아꽃물을 가슴에 물들인다